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소방관과 암


1. 공상이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산재 건 중 대다수가 비슷한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즉, 소방관에게만 유난히 공상 인정이 박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에 산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이슈, 화장품 공장에서 지게차에 치였는데 회사는 산재 신청 피하려고 온갖 꼼수를 부리다가 결국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죽은 케이스를 생각해보면 된다. 결국 "산재"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소방관 같은 숙련된 최고급 인력이든 비숙련의 인력이든 블루컬러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 기사에서는 앨러배마주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직업병을 추정한다는 이야기를 썼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주에서 "입증 책임"을 경감한 법규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장애 추정 법률" (presumptive disability laws)이라는 건데, 이 법들은 소방관에게 특정 질병이나 장애가 생겼을 때 그 질병이나 장애가 소방관 업무에 기인했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을 경감해주는 역할을 한다. 앨러배마주와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우 처럼 거의 완벽한 반대 입증('20년간 담배를 매일 2갑반씩 피워온 소방관이 폐암에 걸렸고, 이 소방관은 20년 경력에 현장 출동 경험이 30회에 불과하다' 라든지... )이 없는 때 직업병을 인정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단지 약한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에 직업병을 인정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즉, 모든 법에서 소방관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법은 "조금 증거를 주면 인정해줄게" 또 다른 어떤 법은 "출동 증거랑 다른 질병 발생 요인이 없다는 걸 보여주면 인정해줄게" 뭐 이런 식으로 조금씩 경감의 정도가 다르다는 이야기. 반면에 우리는 "소방관 활동과 질병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을 소방관이 증명해보이지 않는 이상 인정할 수 없다!" 정도의 태도인 것 같다. (1에서도 말했지만, 이는 다른 산재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공무원연금공단과 법원의 자비와 은혜를 기대하는 대신, 미국의 주들에서는 소방관들이 입법으로 해결을 봤다는 것이다. 아래 링크는 국제소방관협회(IAFF: 미국과 캐나다의 소방노조연합)가 소개하는 장애추정법률 목록이다.

IAFF가 장애추정법률의 통과를 위해 주 의회에서 로비를 벌이고, 주 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3. 소방관이 아닌 터라 Ian Moses 선생님이 SCBA 사용의 중요성을 틈날 때 마다 (어떤 때는 매일매일 포스팅을 할 때도 있음) 강조할 때도 '아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실제로 암에 걸리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보면, 34년 소방관 한 사람의 절규에 가깝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SCBA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세대와 적극적으로 사용한 세대에서 암 발병율이 차이가 있다면, 소방관의 암 발병율은 앞으로 점차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완전한게 아닌 이유는 1)피부를 통해 흡수되는 발암물질 (피부의 온도가 올라가면 흡수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2)매연배출장치가 없는 센터 차고에서의 디젤가스 3)그리고 IARC 공인 2군 발암요인에 해당하는 "교대근무"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1)과 2)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소방관은 수명단축요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퇴직과 연금개시시점이 일반공무원과 달라야 하는 이유)

4. 암투병중인 소방관 여러분의 쾌유를 빕니다.

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방화복의 내·외피 분리에 관하여>

소방본부와 소방서를 다니면서 받았던 질문 중 "왜 우리는 유럽처럼 내피와 외피가 하나로 통합된 방화복을 입지 않는겁니까" 에 대한 대답을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적어보았습니다.

Removable liner system(분리)을 선택할 것인지 sewn-in system(통합)을 택할 것인지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 볼 것은 아닙니다. 미국/캐나다에서는 대다수의 소방국에서 분리형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세탁의 문제
건물화재용 개인안전장비의 선택, 관리, 유지에 관한 NFPA 규정 NFPA 1851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A.7.3.9.2 개인안전장비와 개인안전장비의 구성요소들은 같은 구성요소끼리만 세척하고 오염을 제거해야 한다. 이는 방화복 외피는 외피끼리, 내피는 내피끼리, 방화두건은 방화두건끼리, 장갑은 장갑끼리, 부츠는 부츠끼리 세탁/오염 제거를 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여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경우 외피의 오염물질이 내피로 옮겨 붙는 것을 예방하도록 내피와 외피를 분리하여 세탁하는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 방수투습천이 외피 쪽으로 물이 흐르는 것을 막기 때문에, 내피를 분리하는 것은 더 나은 세탁 결과를 낳는다. 내피를 외피와 분리하는 것은 건조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세탁의 문제는 공식적인 이유이고, 현실적인 이유로는 다음 세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검사와 수선의 문제
- NFPA 1851은 방화복 사용 시작 후 3년이 경과하면 의무적으로 방화복 전체를 검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분리형 방화복은 방수투습천의 검사가 비교적 용이하나, 통합형 방화복은 방화복 전체를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 됩니다.
- 방화복 수선의 80%는 반사테이프에 관한 것입니다. 떨어진 반사테이프를 다시 부착하거나, 손상된 반사테이프를 재부착하는 작업인데, 분리형 방화복은 이 작업이 아주 간단하지만, 통합형 방화복은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 방화복을 완전히 분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3) 불과 열로부터 추가적인 공간의 확보
외피와 내피 사이의 공기층은 열을 안쪽으로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내피로부터의 열, 수증기 배출을 더 손쉽게 합니다. 통합형과 같이 겉감, 방수투습천, 안감이 가까이 붙어 있는 경우에 복사열이 방화복 안쪽으로 더 빠르게 침투하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예상이 될 것 같습니다.

(4)산불진화복으로서의 외피
공식적으로는 건물화재용 방화복은 NFPA 1971, 산불화재용 진화복은 NFPA 1977의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통상 일선 소방관에게 두가지 옷이 다 지급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허용되는 경우) 건물화재용 방화복 외피는 산불진화 시에 단독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 산불진화복으로 입는 자켓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우월합니다. NFPA 1971, EN 469, 또는 ISO 11999의 성능요건을 만족하는 방화복 외피는 산불진화복용 기준인 NFPA 1977, EN 15614, ISO 16073의 거의 모든 성능요건을 만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불화재 진압은 건물화재 진압에 비해 활동시간과 이동시간은 길지만 노출되는 열의 강도는 높지 않기 때문에 내피를 떼고 외피만 입고 활동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통합형의 '알려진' 장점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방화복 제작이 용이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방화복 제작에 드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소방관이 덥다는 이유로 내피를 빼버린 채 화재현장에 출동할 우려가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거의 모든 소방국이 분리형 방화복을 입는데 반해, 유럽에서는 통합형 방화복을 입는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추세는 오래갈 추세는 아니라고 봅니다. EN 469는 NFPA 1971에 비해 느슨한 기준이고, 유럽의 제조사들도 미국에 수출하려면 NFPA 규정과 미국 소방국들의 선호에 맞춰 방화복을 제작합니다. 덴마크의 Viking社가 내외피 분리가 용이한 방화복을 내놓은 것 역시도 이러한 움직임의 일부입니다


Viking의 Guardian 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