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소방관의 사고사례와 그 여파

미국 소방잡지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독하고 있으면, 사고사례들을 엄청나게 많이 접합니다. 어느 지역에서 소방관이 추락했다더라, 화상을 입었다더라, 출동 후 돌아와서 쉬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더라 등등... 사고 뉴스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정말 위험하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냥 소방관이 많아서 사고가 잦아보이는 것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소방관 수가 약 4만명이고 미국 소방관 수가 약 110만명이니까요. 직업소방관만도 40만명이 넘으니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빈도의 거의 10배 수준으로 자주 사고가 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직업소방관이 아닌 의용소방관의 경우에는 훈련부족이나 스킬부족으로 사상을 입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요. 우리는 1년에 한번 생기는 사고가 미국에서는 1달에 한번 꼴로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추측컨대, 같은 영어권인 미국과 캐나다에서 발생하는 빈번한(?)사고들은 비록 사고율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소방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염려가 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로 인해 장비/작전SOP/규율에 있어서 세계의 다른지역들에 비해 좀 더 빡빡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2017년 1월 8일 일요일

필터 방화두건에 관하여

이 모든 일의 시작은 2015년 1월에 발표된 한 실험 결과였습니다.



카드뉴스 형태로 보기(국문): https://goo.gl/qrcuq1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보기(영문): https://goo.gl/FEi8uz


개인보호장비를 완전히 착용한 상태에서 형광입자로 가득찬 방에 들어가 30분 활동한 후에 그 입자들이 다 어디로 갔나 봤더니, 방화두건을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자들이 목과 턱 부분에 잔뜩 붙어있었던겁니다. 따라서 소방관이 연기로 가득한 화재현장에서 활동했다면, 활동 후에는 목과 턱에 연기에서 나온 먼지가 남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턱과 목의 피부는 다른 곳의 피부보다 흡수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고 하며, 피부표면 온도가 섭씨 5도 올라갈 때 피부의 흡수율은 400%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바꿔말하면 고온의 화재현장에서 턱과 목은 유해물질에 취약한 부분이라는 겁니다.

PBI 방화두건(왼쪽)은 고온의 환경에서도 강도와 보호력을 유지합니다
방화두건은 불과 열로부터 소방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착용상의 문제 때문에 니트 원단으로 짜여왔습니다. 방화두건을 잘 보면 구멍이 송송 뚫린 원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니트원단을 사용하느냐 하면, 입고 쓰기 좋고 신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물(왼쪽)과 편물(=니트, 오른쪽)의 차이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유해물질의 침투를 막는 방화두건을 만드느냐입니다. 여기서 잠깐, 그러면 어째서 방화복 속으로는 유해물질이 들어가지 않는걸까요? 그건 바로 방수투습천(moisture barrier) 때문입니다.

아, 그러면 두건에 방수투습천을 넣으면 되겠네요!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방수투습천은 신축성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방수투습천을 넣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Honeywell Life Guard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Honeywell이.
http://www.honeywellfirstresponder.com/en/products/hoods/life-guard-hood 

사실 완전히 해냈다고 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요, 그 이야기는 스펙 본 후에 계속 하겠습니다. 

LIFE GUARD HOOD - Honeywell

[소재] 
니트부분 = 카본/ 케블라®/ 렌징 FR®, 
배열층부분 – 6.0 osy 노멕스®, PTFE 방수투습천, 4.5 osy 노멕스®
무게: 니트부분 = 16.0 osy, 배열층부분 – 15.2 osy
TPP: 니트 = 29, 배열층 – 24 
THL: 니트 = 371, 배열층 364-386 W/m2

[디자인]
사진을 보면 일반적인 방화두건과 달리 목 부분이 상당히 펑퍼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두건의 검은색 부분은 니트부분이고, 갈색 부분은 배열층부분입니다. 즉 갈색 부분은 노멕스-방수투습천-노멕스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방수투습천이 들어갔기 때문에 신축성이 없습니다. 갈색부분에 연기침투를 막기 위해 방수투습천을 쓴 것인데, 디자인을 일반 방화두건과 같은 형태로 했다가는 머리가 들어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혁신적인(?) 형태로 목부분을 펑퍼짐하게 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이 제품은 두상 크기에 따라 사이즈가 있습니다. S-M-L-XL

[가격]
개인 구매시 USD 100 정도로 구매가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혁신적인(?) 디자인에 비해 가격은 높지 않은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방수투습천으로 Gore 제품을 쓰지 않은 것이 단가를 낮출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방수투습천이 Gore 제품이 아닌 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썼으면 Gore 제품이라고 제품 설명에 기재했을겁니다.

[성능검증]

전통적인 방화두건(위)과 Life Guard Hood(아래)의 비교

방수투습천의 능력은 이미 검증되어있으니 별도의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방수투습천을 이용한 문제해결 성공! 그런데, 모든 제조사들이 같은 해결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HALO PARTICLE FILTER HOOD - Majestic
http://www.majhoods.com/halo-particle-filter-hood-1/

Majestic은 HALO라는 이름의 자체 filter를 두겹의 카본니트 사이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연기침투를 막았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검은색 부분은 니트, 그리고 회색 부분은 halo filter가 들어간 세겹 부분입니다. Life Guard Hood와는 달리 목 뒷부분에 신축성 밴드를 넣는 방식(특허출원중!)으로 착용상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제품은 사이즈가 하나 뿐입니다. 다만 필터가 들어간 부분은 신축성이 없어서 일반 방화두건을 썼을 때와 달리 귀를 누르는 느낌이 없고 두건이 귀에서 조금 떠있는 느낌이라고 하네요. 

[소재]
Ultra C6라고 하는 카본소재를 니트로 사용했고, Halo filter를 채용했는데... 문제는 halo filter의 성능을 알려주는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무게는 Life Guard 보다는 가벼울 것 같습니다. 

TPP: 니트부분 34 필터부분 48.6!

[가격]
개인 구매 시 인터넷 최저가로는 USD 100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방화 두건 디자인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제품이지만, 마지막 제품은 조금 다릅니다.

에미넴인줄...

H41 INTERCEPTOR HOOD - Fire-Dex


이제야 우리가 아는 방화두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의 방화두건이 등장합니다. 연기침투는 막지만, 디자인의 큰 변화는 없는 제품인데, 여기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소재]
PBI 20%/랜징 FR 80% 혼방원단 니트 두겹 사이에 노멕스 나노 플렉스라는 이름의 필터를 넣었습니다. 위의 두 제품과는 달리 이 방화두건은 방화두건 전체에 필터가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 제품은 신축성이 있습니다. 사이즈는 하나이고, 목 뒷 부분에 밴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존 방화두건 디자인은 그대로 살리면서 유해물질 침투만 막았네요.

[성능]
PBI의 성능은 위에서 이미지로 확인한 바와 같습니다. 유해물질 침투를 막는 측면에서 보면 Fire-Dex는 이 제품이 0.2마이크론 이상의 입자는 100%, 0.2마이크론 이상의 입자는 95% 차단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노멕스 나노 플렉스 필터의 무게는 방수투습천에 비해 현저히 가볍습니다. 신축성은 좋고, 심지어 통기성도 좋습니다. 공기는 통과시키지만 공기와 섞여 들어오는 작은 유해입자들은 걸러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좋네요! 그런데...

[가격]
인터넷 최저가가 USD 159입니다. 사이즈 실패의 위험과 이질감, 그리고 공기가 안통하는 듯한 느낌을 피하고 PBI와 노멕스의 검증된 성능과 명성을 택하는데 드는 추가적 비용이 USD 60 정도라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부터는 개인의 가치관과 선호가 개입되는 부분이라 어느 쪽을 고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말하기가 어렵겠습니다.

결론
우선은 어떤 위험(연기 속 유해물질에 대한 피부 노출)이 있는지 실험과 보고서로 확인하고, 그 문제를 제품(개선된 방화두건)으로 해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여태까지 연기속 유해물질의 피부침투를 막는 방화두건은 위에서 살펴본 Life Guard Hood, HALO Filter Hood, H41 Interceptor Hood 이렇게 세 제품이었습니다. 세 제품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각 다른 방식의 접근을 택했습니다, 이 역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방화두건을 통해 연기를 막는 것은 좋은 기술이지만, 이 제품들 중 하나를 구매하는 소방관이라도 화재 출동 후에 샤워를 하거나 세수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검댕이 묻은 소방관의 얼굴은 보기에는 멋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방관 건강의 위협요소일 뿐입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