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현장에서의 효과적인 휴식/회복(rehabilitation)을 위한 팁



현장활동을 하는 소방관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화재현장이든 다른 현장이든, 우리는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스스로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동료들을 보호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First in last out이라는 말은 많은 소방관들의 모토이므로, 현장에서는 누구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동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위험 수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소방관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위험한 마음가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격렬한 신체활동 후 물과 영양분을 보충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점점 더 많은 정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운동하고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불진압, 건물화재진압, 그리고 차량 구조와 같은 모든 긴급대응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스포츠 팀들은 '탈수의 위험성', '적절한 수분섭취가 가져오는 기량 향상 및 운동능력 회복시간의 단축'에 주목해옴으로써 휴식/회복분야의 발전을 주도해왔습니다.

체온 상승에 기인한 질환/부상은 심각하거나 지속될 수 있으며, 심지어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매년 고등학교 풋볼 시즌 때면 볼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가장 무더운 시기에 초고강도의 운동을 하는데, 종종 이는 사망 사고로 이어집니다.

소방관과 운동선수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소방관의 경우 방화복이 열을 옷 안 쪽에 가두어 탈수 및 열 관련 문제들의 발생을 가속화한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덥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벗어나 펌프차 뒷편에 앉아 콜라를 마시면서 초코바를 먹는 것이 현장에서의 휴식/회복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소방관들이 휴식/회복 중에 지급받는 물품의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초코바나 탄산 음료를 피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중간광고
여러분의 특수방화복은 PBI입니까?
더 알고 싶다면 클릭

휴식/회복의 시작점은 상황발생 전이어야
우리는 언제 전력을 다해야하는 출동을 나가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안전센터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청소를 하고 있다가도 당장 5분 후에 화염 속에서 온 힘을 쏟아가며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러고 있다가
순식간에 이렇게

모든 소방관의 가장 큰 의무 중 하나는 출동 준비입니다. 시작은 몸을 더위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날씨가 따뜻할 때 야외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더운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날씨에 자신을 적응시키십시오.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른 중요한 상황 전 루틴은 다음 출동 전에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입니다. 더운 날 화재발생을 기다렸다가 수분을 보충한다면 이는 이미 너무 늦습니다. 언제나 충분히 수분을 섭취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일산화이수소님

대다수의 소방관들은 몸에 충분한 수분을 담아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니라, 단지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피나 탄산음료는 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은 60%가 물이며, 물은 계속해서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할까요? 정확한 답은 없으나 "하루 8잔의 물"은 기억해둘만 합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마도 "목마르기 전에 마시고, 자주 마셔라."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소변의 색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Brayton 소방훈련장에서 사용하는 아래의 도표가 유용합니다. 이 훈련장에는 모든 화장실에 이 도표가 붙어있어서 훈련생들이 체내수분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분섭취는 화재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훈련 중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훈련중 열관련 부상-사망 보고는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소변색으로 확인하는 체내수분량


휴식 취하기
화재현장에서 활동하거나 훈련 중에 우리는 서로를 잘 지켜보아야 합니다. 피로나 열스트레스의 징후를 감지하고, 필요에 따라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이는 상향식 방식의 접근을 취해야 합니다. 소방관들은 서로를 지켜보고, 팀장은 팀원들을 지켜보아야 하며, 현장 지휘관은 각 팀이 현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지, 부여된 작업의 난이도는 어떠한지, 날씨 상황은 어떠한지 살펴야 합니다.
열과 관련된 피로를 조기에 감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현장지휘관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여 다른 센터/서의 증원을 요청할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장지휘관은 기상악조건을 고려하여 필요한 경우 증원을 요청해야 하며, 수분섭취주기, 휴식/투입 로테이션을 운영해야 합니다.

현장지휘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장비를 벗어야
고온의 여름날, 현장의 위험지역을 벗어나자마자 개인안전장비를 벗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헬멧과 방화두건을 벗어야 하는데, 머리로 빠져나가는 열이 7~10%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방화복 자켓을 벗고, 공기가 다리로 순환할 수 있도록 앉아서 방화복 바지를 내립니다. 이렇게 해야 방화복 안에 누적된 열을 더 빠르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지를 내리는게 열을 더 빨리 식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의학적 모니터링
건물 화재에 들어가는 모든 소방관의 신체상태를 진입 직전에 확인하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지만, 휴식/회복 중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가능하며, 꼭 해야하는 일입니다. 휴식 중 혈압과 맥박을 잼으로써 재투입 여부를 결정하는데 기반이 되는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적극적으로 열을 식히기
과거에는 불 밖으로 나와서 소방차 뒷편에 잠시 앉아있는 것을 좋은 휴식/회복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방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휴식/회복에 있어서 더 적극적인 방법들을 채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게 됩니다. 근래에는 특별하게 제작된 트럭, 버스, 트레일러, 오래된 앰뷸런스를 휴식/회복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사용하건간데 대원들이 휴식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물과 스포츠 음료를 아이스박스에 준비해두어야 합니다. 현장활동시간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얼음과 음료를 미리 다시채워두어야 합니다. 찬물에 적신 수건을 아이스박스에 보관해두었다가 나오는 대원들에게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차가운 젖은 수건을 머리나 목에 두르는 것이 열을 식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수건이 열을 식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냉각/분무 팬(fan: 선풍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제품들을 사용하면 휴식지역의 온도를 상당히 낮출 수 있습니다. 팔뚝을 찬물에 담가둘 수 있게 제작된 의자를 사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팔뚝을 찬물 안에 넣어두는 것이 심부체온을 떨어뜨리는데 매우 효과적이며 수동적인 휴식/회복에 비해 컨디션을 빠르게 회복시킨다고 합니다.
분무팬
팔뚝을 차가운 물에 담궈놓을수 있는 의자

열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고온의 환경에서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현장에서의 휴식/회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이러한 적극적 휴식/회복의 중요성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미국에서는 NFPA 1584: Standard on the Rehabilitation Process for Members During Emergency Operations and Training Exercises가 참고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Stay cool!



원문:
http://www.firerescuemagazine.com/articles/print/volume-7/issue-8/firefighter-safety-and-health/tips-for-effective-fireground-rehab.html

2016년 11월 21일 월요일

방화복의 내구연한은 정말 3년일까



매년 국정감사 때 마다 언급되는 주제 중에는 "노후 방화복"이 있습니다. 3년의 내구연한이 지나 기능이 떨어진 방화복을 소방관들에게 입힌다는 것이지요. 지역별로 보급율과 노후율이 표시된 자료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언론이나 국회의원 모두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아무도 "방화복의 내구연한은 왜 3년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태평양을 건너 북미로 가보겠습니다. NFPA 1851 개정 때 마다 논란이 되는 규정이 있습니다. NFPA 1851은 건물화재진압용 앙상블 (방화복, 두건, 장갑, 헬멧, 부츠)은 제조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사용을 중지(retire)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NFPA Standard는 법이 아니며, 이를 준수할 것인지는 각 소방본부의 재량에 속합니다)

건물화재/근접화재진압용 보호앙상블의 선택, 관리 및 유지에 관한 NFPA 표준


그런데 많은 소방관들은 이 규정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일까요? 미국에는 소방본부(fire department)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약 3만여곳 정도 있습니다. 이 중에는 FDNY같이 재정이 탄탄한 곳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FDNY: 방화복과 두건은 Morning Pride 제품 (PBI 계열)

대도시를 벗어나면, 미국소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환상적인 곳이 아닙니다. 10년의 내구연한을 넘겨 장비를 사용하는 곳도 부지기수이고, 방화복 한 벌을 여러명이 돌려쓰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10년이라는 내구연한이 짧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 방화복은 몇가지 이유로 상당히 비싸기까지 하니 새로운 장비 구매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비싼지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다시 대서양을 건너서 유럽을 보자면, 유럽은 미국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코틀랜드 Grampian Fire and Rescue Service에서 개인안전장비 담당자로 27년 동안 일했던 Ian Moses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10년 정도 쓴 장비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Grampian FRS의 방화복 (PBI 계열)

영국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제가 예전에 찾았던 자료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원문)
"In addition to this, firefighter PPE has an average life span of 7- 8 years, depending on the initial specification and a short term contract (4 years) would result in serviceable PPE being returned to the provider much earlier than necessary."
(번역)
"이에 더하여, 소방관의 개인안전장비는 평균적으로 7-8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초기 스펙과 짧은 계약기간(4년)에 의존하는 것은 아직 사용가능한 개인안전장비를 필요이상으로 이르게 공급업체에게 반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계약기간"은 리스(lease) 계약기간을 말합니다. 영국은 개인안전장비를 구매하지 않고 리스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자, 그러면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조일로부터 3년이 지난 방화복을 무조건 노후 제품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을가요?

다른 모든 의류/장비와 마찬가지로, 방화복은 사용환경/관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화재현장에 자주 들어갔다 나오고, 오염되고, 자주 세탁하는 방화복은 그렇지 않은 방화복에 비해 수명이 짧습니다. 이런 방화복들이 자주 교체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방화복을 입는 소방관의 안전과 건강은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가혹하지 않은 환경에서 주로 옷장을 지키고 있었던 방화복 역시 3년의 내구연한을 적용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방화복에서 가장 취약하고 수명이 짧은 부분은 바로 방수투습천입니다. 물이 새기 시작하면 수선하거나 교체해야 합니다. 방수투습천의 수명은 어느 정도 될까요? 미국 방화복 제조사의 브로셔가 힌트를 줍니다. 북미 방수투습천의 양대 제조사인 Gore와 Stedfast는 모두 자사 제품에 3~4년의 품질보증기간을 부여합니다. 이 기간 안에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는 이야기이지요. 적절히 관리가 된다는 전제 하에 3~4년 정도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겉감은 어떨까요? 제품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겉감 역시 3~7년 정도의 품질보증기간을 부여합니다. 그 안에 발생하는 문제는 책임질 수 있다는거죠.

미국의 방화복 제조사인 Globe Turnout Gear는 홈페이지에 사용연한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방화복의 겉감과 단열내피는 4~6년, 방수투습천은 2~4년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단 주의해야할 점은 이 사용연한이 "실제로 주기적으로 사용되면서 적절히 관리가 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잡혀있다는 것입니다. 

Globe Turnout Gear의 Serviceable Life Guidelines

개인적으로는 방화복의 내구연한을 일률적으로 두지 않고 검사를 통하여 개별적으로 노후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현재는 숫자로만 표시되는 노후율 때문에 적지 않은 소방본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방화복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과다하게 공급된 방화복 역시도 3년이 지나면 실제 사용여부와 관계없이 노후 방화복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노후율에 신경을 써야하는 소방본부들은 실제 필요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방화복을 구매하게 됩니다.

짧은 내구연한은 불필요한 지출을 발생시키는 것도 문제이지만, 방화복 산업 발전에도 장애물입니다. "3년만 버티면 된다."가 제조사의 마인드가 되면 더 오래가는 튼튼한 제품은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제조사간 실력차이를 확인하기에도 "제조일로부터 3년"은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디테일에 신경을 쓴 방화복과 안 쓴 방화복의 차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조달 시스템은 비용을 덜 들인 후자의 손을 들어주기 쉽고요.

사실 방화복의 내구연한을 늘리자는 주장이나 없애자는 주장은 소방 내부에서 나오기 어렵습니다. 언론에서 "낡은 방화복을 계속 입으라는 안전처" 같은 제목을 뽑기에 아주 좋으니까요. 하지만 덮어놓고 3년마다 새 제품을 지급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2년 사용된 방화복이라도 필요하다면 내구연한이 도래하지 않았더라도 교체해줘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유연한 내구연한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6년 11월 14일 월요일

현장에 따라 다른 소방관의 보호복

우리가 특수방화복이라고 부르는 보호복은 본래 structural firefighting clothing, 즉 건물화재진압용 소방복입니다. 하지만 소방관이 건물화재만 진압하지는 않습니다. 소방관의 현장은 차량사고구조, 건물붕괴구조, 구급상황, 산불화재 등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광주소방본부의 PBI 특수방화복

특수방화복의 원단배열층은 겉감+방수투습천+안감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성은 화재가 발생한 건물 내로 진입하여 화재를 진압하거나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것을 염두에 둔 구성입니다. 따라서 건물화재진압용 소방복은 열과 화염으로부터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방화복 배열층 예시 - PBI Lightweight System


구조(tech rescue) 혹은 도시탐색구조(uban search and rescue / USAR)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 좁고 막힌 공간에서의 활동에는 날카로운 금속이나 유리, 혈인성 병원균(blood-borne pathogen), 각종 탄화수소 액체나 화학물질로부터의 보호가 더 중요해지며, 상대적으로 고온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은 낮아집니다. 또한 긴 활동 시간과 다양한 움직임 때문에 보호복은 더 가볍고 유연해져야 합니다. 따라서 구조용 보호복은 안감 없이 겉감+방수투습천의 원단 구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美 Globe社의 PBI 구조용 보호복 

산불진화용 보호복(wildland firefighting clothing) 열과 화염에 대한 방어가 중요하지만 활동 반경이 넓기 때문에 무거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특수방화복을 입고 산불진화에 나서면 그 무게 때문에 빠르게 지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수투습천 없이 겉감(한겹 또는 두겹)만으로 구성된 보호복이 나옵니다. 산불진화복에도 난연성 원단이 사용됩니다. 최소한 옷에 불이 붙었을 때 불꽃이 번지거나 계속 타들어가면 안되니까요.


터키 산림청의 PBI TriGuard 산불진화복

____
*국내에서 PBI는 특수방화복용 겉감, 방화두건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PBI 특수방화복은 산청과 하나산업에서, 방화두건은 산청에서 제작하여 공급하고 있습니다.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는 탁월한 난연성 섬유인 PBI의 제조사입니다. PBI 원단이 사용된 소방용 보호복은 전세계에서 소방관을 열과 화염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2016년 11월 6일 일요일

방화복의 세탁에 관하여

※ PBI Performance Products, Inc.(홈페이지)는 특수방화복, 화재진압용 장갑, 방화두건에 사용되는 방염섬유 PBI의 제조사입니다. 아래의 글에서 제시되는 기타 제품(세탁기, 건조기, 건조대, 옷걸이 등)과는 무관합니다.
PBI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 홈페이지
_______


우리의 방화복 내구연한은 3년입니다. 이는 선진소방국가 치고는 조금 짧은 편입니다. (꼭 3년이어야 하는가는 다른 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방화복의 내구연한이 비교적 짧다보니 자칫 관리에도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최근 소방활동과 암 간의 연관성이 주목 받으면서 다시 방화복의 관리에 신경을 쓰는 소방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방화복 세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관리의 나머지 부분인 보관/검사/수선은 다른 글로 정리 하겠습니다.

1. 왜 깨끗한 방화복은 중요한가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건강과 안전.

저 연기, 마시지도 말고 피부에 양보하지도 맙시다
(1)건강
화재현장의 연기 속에는 여러가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독물질들이 많습니다. 소방관들의 암발병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높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발암물질은 호흡기로만 신체로 유입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해물질은 피부를 통해서도 흡수될 수 있습니다. 더러워진 방화복 속의 유독물질은 호흡기를 통해, 그리고 피부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옵니다. 단기간에는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현장활동을 하는 소방관들은 유독물질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며 이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비유를 하곤 합니다. "화재현장은 담배 수천, 수만개비가 동시에 타들어가는 곳과 같다." 담배연기에 찌들은 옷을 세탁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는 것, 다시 입는 것은 여간 찜찜한 일이 아니겠지요.

저라면 가까이 가지 않을겁니다

(2)안전
깨끗한 방화복은 어느 정도 열을 반사해냅니다. 반면에 더러운 방화복은 열을 흡수하여 안쪽으로 보냅니다. 복사열이 더 빨리 방화복 안쪽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옷에 묻은 오염물질이 기름이거나 탄화수소(hydrocarbon)라면? 방화복이 불에 붙거나 제대로 된 방염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100%를 해내야하는 현장에서 소방관을 보호해야할 방화복이 도리어 소방관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방화복에 불이 붙으면 곤란하겠지요


사실 깨끗한 방화복이 중요한 이유는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방화복의 수명 연장입니다. 더러운 방화복은 더 빨리 낡고 헤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방화복의 내구연한이 짧으니, 방화복을 더 오래사용하는 것은 건강측면과 안전측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하의 내용은 미국방화협회(NFPA) 표준 1851 - 건물화재진압용 보호앙상블의 선택, 관리 및 유지에 관한 표준에 근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또한, 섬유, 원단, 방화복 제조사, 그리고 업계 전문가들의 글도 참조하였습니다. 방화복의 세탁 방법에 있어 유럽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만, 일관된 기준이 없고 NFPA 1851 수준으로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지침이 주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유럽 쪽의 경향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이하의 내용은 작성자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지식을 이용해 작성되었으나 작성자는 내용의 정확성을 완전히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 "세탁을 하면 방화복의 방염성능이 떨어지나요?"에 대한 답은 "아니요." 입니다. 현재 방화복에 쓰이는 소재들은 모두 그 자체로(inherently) 방염성능이 있습니다. 약품처리를 하거나 별도로 가공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탁을 거듭하여도 소재의 방염성능이 저하되지는 않습니다.

2. 어떻게 세탁할 것인가

(1)세탁기
KFI 인정을 받은 방화복 세탁기가 나와있습니다. 35kg급 제품들인데, 이정도면 최대 6~8벌 정도 동시 세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용량 상업용 세탁기는 가정용 세탁기에 비해 좋습니다. 큰 드럼이 사용되면 아무래도 빨래도 더 잘됩니다. 회전에 의해 올라간 세탁물이 떨어지면서 세탁이 되는 것이 드럼세탁기의 원리인데, 드럼이 커지면 낙차도 커지니까요. 다양한 전과정(전처리-세탁-헹굼-탈수) 세팅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또한 산업용 세탁기는 가정용 세탁기에 비해 내구성이 좋고 고장도 잘 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돌이 세탁기나 가정용 세탁기는 사용하면 안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머리부분이 열리는 (Top-loading) 세탁기 중 세탁봉을 사용하는 제품은 방화복을 마모시키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지만, 세탁봉이 없는 제품은 사용에 별 무리가 없습니다. (추가: 탈수 제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통돌이 세탁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다만, 드럼세탁기든 통돌이세탁기든 세탁기에 너무 많은 세탁물을 넣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세탁봉이 있으니 곤란하지만

이건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탈수속도가 제어된다면요.

(2)세탁

1)세탁온도
40도 정도의 온수를 사용해서 세탁합니다. 왜 더 높은 온도는 안되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NFPA 1851 (건물화재진압용 보호앙상블의 선택, 관리, 유지에 관한 NFPA 표준)에서는 보호앙상블(여기서 말하는 앙상블은 헬멧, 부츠, 장갑, 방화복, 방화두건을 뜻합니다) 중 일부가 손상될 수 있다 정도로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방화복 겉감/방수투습천/안감 제조사들의 홈페이지를 확인해본 결과, 아무래도 방수투습천이 더 높은 온도의 세탁에 취약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2)세제/섬유유연제/표백제
되도록이면 액체형 세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루 세제 보다는 액체 세제가 물에 더 잘 녹고 찌꺼기가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pH값이 중요한데, 6~10.5 범위에 들어오면 되니 중성 혹은 약알칼리성 세제를 사용하면 됩니다.

섬유유연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섬유유연제 성분이 방화복에 사용된 섬유를 코팅하게 되는데, 이 경우 방염성능이 저하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방화복은 원래 불이 붙지 않아야 하는데, 이 특징을 어느정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섬유유연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섬유유연제가 방수투습천의 표면에 붙으면서 투습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방화복 세탁기 중에 섬유유연제 자동투입기능이 있는 제품이 있습니다. 그 기능은 사용하지 마십시오.

염소계 표백제는 절대 사용금지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모든 방화복에는 아라미드 섬유가 사용됩니다. 아라미드 섬유는 염소계 표백제에 의해 분해됩니다.

방화복의 적


3)세탁시 주의사항
최상의 세탁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세탁기에 너무 많은 양의 빨래를 넣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용 세탁기를 사용한다면 2벌 이상을 동시에 세탁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외피와 내피는 분리해서 세탁해야 합니다. 분리해서 같은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탁기에서 세탁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오염물질은 겉감에 많이 뭍고 안감에는 많이 뭍지 않습니다. 겉감과 안감을 동시에 세탁기에 넣고 빨면 겉감의 오염물질이 안감으로 옮겨 붙는 교차오염(cross-contamination)이 발생합니다.

방화복 제조사들은 세탁 시 겉감과 안감을 모두 뒤집어 세탁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건물화재진압용 보호앙상블(방화복, 두건, 장갑, 부츠 등)의 모든 제품은 동종의 제품끼리만 섞어서 세탁을 해야합니다. 즉, 방화복 겉감은 겉감끼리, 안감은 안감끼리, 방화두건은 방화두건끼리, 장갑은 장갑끼리 세탁합니다.

모든 지퍼와 파스너 테이프(벨크로, 일반명사로는 hook and loop)는 잠근 상태로 세탁해야 합니다. 날카로운 부분이 방화복의 다른 부분을 마모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탁 전에 모든 주머니를 비우는 것도 잊지 마세요!

일반의류와 방화복은 섞어서 세탁하지 말아야할 뿐만 아니라, 아예 사용하는 세탁기가 달라야 합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방화복 세탁 후에는 아무런 세탁물도 넣지 않고 60도 이상의 물로 헹굼/탈수 사이클을 돌린 후에 일반의류를 세탁해야 합니다. 세탁 후에도 세탁조가 완전히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방화복-일반의류간 교차오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찌든 때나 얼룩이 있는 경우에는 세제와 부드러운 솔을 이용하여 부분세탁을 먼저 한 후에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분적인 오염 제거는 최대한 빨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안그러면 영원히 얼룩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철브러시는 부드러운 솔이 아닙니다...

칫솔 정도가 적당합니다
4)헹굼 및 탈수
여기서 그 유명한 G-force 100 제한이 나옵니다. 방화복 헹굼/탈수 시 세탁조의 G-force는 100을 넘겨서는 안된다는 거죠. 어려운 말 다 빼놓고 이야기하자면, 방화복은 약한 세기로 탈수해야한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첫째로는 안감 중 단열내피(thermal liner)부분 때문입니다. 단열내피는 물을 머금으면 원래 무게보다 몇배가 무거워집니다. 이 상태에서 고속 탈수를 하면, 무게에 의해 원단이 뒤틀립니다. 결과적으로 단열내피의 어떤 부분은 두꺼워지고 어떤부분은 얇아지는데, 이러면 방화복의 열방호성능이 균일성을 잃습니다. 즉 같은 불길에 노출되었는데 특정부분은 더 빠르게 화상을 입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부직포 행주
부직포 행주 써보셨나요? 부직포 행주를 쓰다보면 처음에는 행주의 두께가 모든 부분에서 동일하다가도 빨아서 쓰고, 짜다보면 어느새 어느부분은 뭉치고 어느부분에는 구멍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방화복 안감은 방염섬유로 된 부직포인 경우가 많습니다. 강한 탈수를 거치다보면 오래쓴 부직포 행주처럼 되는거죠.

겉은 멀쩡한데, 안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방수투습천의 손상입니다. 본래 방수투습천은 아주 작은 구멍들로 이뤄져있어 물은 통과시키지 않고 증발하는 땀을 통과시키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런데 탈수를 강하게 하면 억지로 방수투습천으로 물을 통과시키려는 압력이 가해지면서 방수투습천에 손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방수를 하지 못하는 방수투습천이 되는 것이지요. 방수투습천을 봉제한 솔기를 덮는 심실링 테이프 역시 강한 탈수에 의해 손상될 수 있습니다.

5)찌든 때는 탈지제로(?)
degreaser, 탈지제라고 불리는 제품들은 기름을 제거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이 제품들에 대한 NFPA 1851의 입장은 애매합니다. 조심하라는거죠. 약간만 뭍혀서 어떤지 확인해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사용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탈지제는 보통 탄화수소계열 제품이기 때문에 사용 후에는 반드시 방화복을 완전히 세탁하고 건조해야 합니다. 기름 때만 빼고 그대로 뒀다가는 다음 화재 출동 때 불 붙는 수가 있습니다.



(3)건조
자연건조와 건조기를 이용한 건조가 가능합니다. NFPA 1851은 자연건조를 권장합니다.

1)자연건조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공간에서 걸어서 말리는 방법입니다. 선풍기를 사용하여 환풍을 시켜주면 더 좋습니다. 직사광선에 말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외선은 (파라)아라미드 섬유의 강도를 약화시킵니다.


여유가 있으면 강제통풍을 해주는 건조캐비넷도 괜찮겠습니다만...

걸어놓으면 옷 안쪽으로 바람을 보내주는 건조용 옷걸이도 있네요

지속적인 자외선 노출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방화복은 직사광선을 피해야하며 형광등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2)기계건조
되도록이면 열을 사용하지 않고 공기순환만을 이용하는 건조기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열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건조기라면, 온도가 섭씨40도를 넘지 않는 설정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온건조를 사용하는 경우 방수투습천이 굳거나 갈라질 수 있습니다. 방화복의 중요 기능 중 하나인 방수성능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지요.
 건조기에서 완전히 건조시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방화복 원단에서 완전히 습기가 제거되는 경우 방화복이 수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자외선 건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외선은 파라아라미드 섬유의 강도를 약화시켜 방화복의 내구성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기계식 건조기를 추천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반사테이프의 손상입니다.
왼쪽은 기계식 건조기를 이용한 건조, 오른쪽은 건조캐비넷

*국내에서 판매되는 건조캐비넷 중에 자외선 살균을 해준다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자외선 기능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 나가며

흔히 방화복을 '소방관의 갑옷' 이라고 부릅니다. 잘 관리된 방화복은 현장에서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고 화재현장에서 맞닥들이는 각종 유해요소로부터 소방관을 보호해줍니다. 올바른 세탁과 관리로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현장대원이 됩시다. 

Stay safe, stay healthy! 

____________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페이스북 페이지도 "좋아요"해주세요. 방화복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올라옵니다.
https://www.facebook.com/pbiproducts.asia 

PBI와 다른 소재의 차이가 무엇이냐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dSpR8JdxP4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