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6일 월요일

방화두건을 거부하는 소방관들



작년 8월에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서 주택화재 내부 수색 중 소방관이 길을 잃고 순직하는 사례가 있었다. 사고조사위원회에서는 소방관의 사인을 공기호흡기 공기 고갈로 인한 가스 흡입으로 판정했으나, 이 판정과 별개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은 "모든 소방관에게 방화두건을 착용시켜라"라는 권고를 해당 소방국에 내렸다. 위 동영상에서 방송국은 개인안전장비의 확충을 알리는 목적으로 취재를 했으나 인터뷰에 응하는 소방관들의 말투에는 짜증이 뭍어난다. 

"야, 이거 꼭 해야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방화두건은 귀와 목 부분을 덮기 때문에 소방관의 열 감지를 어렵게 만든다. 이 때문에 방화두건을 착용을 기피하는 소방관들이 많다. 하지만 이미 방화두건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수많은 연구가 나와있고, 전세계의 많은 소방관들은 방화두건 착용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소방이 워낙 마초들의 세계인지라, 방화복, SCBA 등 새로운 개인보호장비의 도입 때 마다 "우리는 그런거 필요 없소." 소리가 나오지만 결국에는 이런 장비들이 점차 정착해가고 있다.

좋은 날이란 것은 모두가 집에 가는 날을 말하는거지.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방화두건 제조사는 Majestic이다. 
http://www.majhoods.com/styles/
여기서는 PBI를 사용한 2겹두건, 소방교관용 3겹두건이 다양한 조합으로 나온다. 

Majestic PAC III, 2겹짜리 두건 
겉감은 PBI Gold (40% PBI/60% Kevlar)
안감은 20% PBI/80% Lenzing FR

하지만 배짱 장사이기 때문에 유럽 쪽 인증은 받을 생각도 없어보이고, 북미 외에는 판매망도 잘 없다. 

[예전에 쓴 글] 소방 기동복이 불편한 이유와 대안(?)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동복에 대해서는 엄청 불만이 많습니다. 땀이 잘 안빠지니 그대로 몸을 타고 흘러내리고, 통기성이 안좋아서 여름에는 엄청 덥고, 몇 번 빨면 구김도 잘 생기고... 이런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많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심각했던 것은 "기동복을 안에 입고 진압을 하고 나면, 신발 안에 물이 차서 발이 퉁퉁 붓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도 이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의 상황을 보니 우리는 좀 더 상황이 나은 것 같습니다. Station wear에 관한 표준인 NFPA 1975 인증을 받는 방염소재 station wear는 보통 Nomex IIIA를 쓴다고 합니다. 메타아라미드 93%, 파라아라미드 5%, 대전방지체 2%의 조합이지요. 이 원단에 대한 불만은 이미 1994년경에 있었습니다. 위에서 적은 우리나라 소방관들의 불만과 같은 내용으로요. 착용감이 완전 별로다 이거죠.

We don't like it either, bros.


우리나라 소방관들이 입는 기동복에 쓰이는 조합은 메타아라미드 60%, FR레이온35%, 폴리우레탄 5%입니다. 레이온은 부드럽고 차가운 느낌을 제공하므로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Nomex IIIA에 비해 국내 원단은 더 시원해야 합니다. 폴리우레탄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불붙는 기동복"의 주범으로 지목되었습니다만, 기동복에서의 본래 역할은 옷에 신축성을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죽어라고 욕을 먹는 KFI가 사실은 그나마 해외의 기동복보다는 나은 옷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한 것이 엿보입니다.


억울합니다 ㅠㅠ


문제는 그렇게 만든 옷이 욕을 먹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기존의 옷은 폴리에스터로 만들었는데, 폴리에스터는 통기성도 엄청 좋고, 땀 흡수 배출도 엄청 빠르고, 착용감도 좋으니까요. 그런데 이 좋은걸 왜 바꿨냐는 말이죠.


바람 숑숑 활동복♡♡


올해 초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프레스노에서 소방관이 화재 가옥에 올라가서 지붕에 구멍을 뚫는 vertical ventilation 작업을 하다가 지붕이 무너지면서 그대로 불 속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신 70%에 화상을 입었고, 40% 이상은 2~3도 화상이라고 합니다. 일단 살긴 살았는데, 처음에는 위독한 상황이었고, 2달 정도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방화복은 꽤 많이 손상되었을 것이고요. 추락 후 구출까지 3분 정도가 걸렸다고 하는데, 어떤 방화복도 이런 긴 시간동안 착용자를 완전히 보호하지는 못합니다.


Fresno 사고 사례


자, 그럼 이 소방관이 폴리에스터 기동복을 입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눠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같은 열가소성 수지는 고온에 노출되면 녹습니다. 녹으면 착용자의 피부에 그대로 달라붙습니다. 화상을 입는 것으로도 아픈데, 뜨겁게 달궈진 플라스틱이 몸에 그대로 붙는 것입니다. 화상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는거죠.

열가소성 수지가 아닌 다른 소재는 어떨까요? 하다못해 면이나 양모같은 소재도 고온에 노출되면 녹는게 아니라 타버립니다. PBI나 아라미드 같은 방염소재들은 어지간해서는 원형을 유지하고요. (물론 PBI가 아라미드 보다는 더 높은 온도에서 원형을 유지합니다) 결국 어떤 소재로 된 내의나 기동복을 입었는지에 따라 이런 상황에서 화상의 정도, 심하게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NFPA 1975에서는 열안정성(thermal stability) 시험을 규정에 넣고 기준을 통과한 제품에만 인증을 부여합니다. 섭씨 260도의 고온에서도 녹거나, 액화되거나, 불이 붙어서는 안된다는거죠. 이건 필수사항입니다. 오히려 방염성능은 선택사항입니다. 어차피 불을 막는 역할은 방화복이 하니까요. 기동복에 방염성능을 요구할 것인가는 각 소방본부가 결정할 사항입니다. 일부 본부들에서는 "소방관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불에 노출될 수 있으니 방염성능이 필요하다" 라고 하여 방염성능을 갖춘 기동복을 구매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본부들에서는 "그것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하여 일정수준 이상의 열안정성을 갖춘 기동복을 구매하는 겁니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습니다. 폴리에스터 기동복은 평상시의 시원한 착용감과 위험한 상황에서의 추가적 화상 위험을 맞바꾸며, Nomex 기동복은 형편없는 착용감 및 불편함과 위험한 상황에서의 추가적 보호를 맞바꾸는 셈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기동복은 Nomex 보다는 나은 착용감과 위험한 상황에서의 보호를 추구했지만, 폴리에스터와 비교당하면서 몹쓸 물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대안이 없을까요? 현행 기준에서 아라미드의 비율을 줄이고, FR레이온의 비율을 늘려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만, 성능 기준은 그대로 두되, 통기성이나 수분흡수성에 대한 기준을 추가하고 혼방 비율에 대한 규정을 폐지하면 원단 제조 업체에서 다양한 조합을 시도해볼 것 같습니다.


E의 노멕스에 비해 현저히 나은 통기성을 보여주는 PBI BaseGuard 제품들 (F, G)


끝으로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에서는 PBI 20%, Lenzing FR 70%, Tencel 10% 조합인 PBI Baseguard를 밀고 있습니다. 폴리에스터의 편안함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Nomex 보다야 훨씬 나은 착용감을 제공하며, 현재 사용되는 기동복 원단 보다도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이상 이야기를 가장한 제품 홍보 끝.

2015년 10월 25일 일요일

Schmitz Mittz 장갑은 소방관용 장갑이 될 수 있는가



꽤 인상적인 제품을 만났다. 

Schmitz Mittz 장갑.

캐나다에서 온 이 장갑은 최근 우리나라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동영상이 보여주는 모습은 거의 무적에 가까운 장갑의 모습. 칼로도 잘리지 않는 막강한 절단저항성(cut resistance), 프로판 가스로 만들어낸 불꽃에도 화상을 입지 않는 손바닥, 소방용 장갑으로 이만한 제품이 있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이다.

동영상 진짜 잘만들었다. 돈도 몇 푼 안들었을듯.

그런데, 인증이 없다. 
캐나다에서 만든 제품이고, 소방관용으로 쓰이고 있다면 NFPA 1971 "건물화재진압 및 근접화재진압용 개인안전장비에 관한 기준"에 따른 인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만약에 유럽에서 소방관용 장갑으로 쓰인다면 EN 659 "소방관용 보호장갑" 인증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도 없다. 대체 무엇이 부족하길래 인증이 없는걸까? 

마침 멘토인 이안 모제스 선생님이 위의 동영상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터라 여쭤보았다.
"My question is... why didn't they get EN 659 certification for their products? Are these gloves good enough for structural firefighting?"
"제 질문은요... 왜 EN 659 인증을 받지 않은걸까요? 이 장갑들은 건물화재 소방활동에 사용하기에 충분한건가요?"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 역시 대답이 왔다.
"You always need to be careful when you look at these video's. It show a flame test on the palm side of the glove, but not the back of the glove or the cuffing area. The glove complies to EN 388, but the penetration and abrasion performance is very poor. Also it does not mention viral protection, so I am not sure what moisture vapour barrier it contains. Its doubtful if it would pass EN 659, and obviously not NFPA either."
"이런 영상을 볼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해. 영상은 손바닥 부위에 대한 화염 노출 실험은 보여주지만, 같은 실험을 손등 부분이나 소매 부분에 하지는 않아. 이 장갑은 EN 388(기계적 위험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는 장갑)기준을 충족시키지만, 관통과 마모에 대한 저항성능은 취약해. 또한 이 제품은 바이러스에 대한 보호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 따라서 나는 이 제품이 어떤 방수투습천을 쓰는지 확실치가 않네. EN 659를 통과할 수 있을지, 그리고 NFPA (1971)을 통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네."

그리고 시애틀 소방 조용석 커미셔너께서 모제스 선생님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셨다.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신 듯.

원래 Schmitz Mittz 장갑은 정유노동자용 보호장갑인 것 같다.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웹사이트의 주소 http://www.schmitzmittz.com/products/oil-gas-safety 때문

물론 제품명에 대놓고 Rescue와 extrication이라고 쓴 제품들은 구조와 (차량 혹은 건물) 구출용으로 보인다.

소방관들이나 구매담당자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Schmitz Mittz 장갑들이 EN이나 NFPA 기준에서 소방관용 장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Rosenbauer 헬멧이나 MSA 헬멧과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현장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헬멧들은 유럽에서도 소방용 헬멧으로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면책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수 있으나, Schmitz Mittz 장갑은 장갑이 가진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구매담당자나 착용자가 "문제 없는 제품을 사용했음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다. 실제로는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모르므로 일단은 보수적으로 이야기 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귀여운 라이터 불꽃

산불총회에서 만난 B사장님은 매우 열정적이었다. "원사방염 산불진화복, 비쌀 이유가 없습니다."라는 팻말을 세워두고 자신이 새로 개발한 원단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다. 시험용 원단을 부스 앞에 두고 시연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원단에 불을 붙일 때 사용하는 열원이 라이터였다는 점이다. 참으로 귀여운 불꽃으로 산불진화복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계신 것이었다.

"에이, 사장님, 이걸로 테스트해서는 별 차이가 없죠."

"라이터 불꽃이 1400도에요."

"그럴리가요. 저희가 프로판 가스로 해서 출력 강하게 해야 그게 1000도 정도 된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내가 검색해봤는데 그렇게 나와요."

라고 하시더니 네이버 지식인 검색을 주섬주섬 보여주신다. '아니, 사장님 네이버 지식인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많아요.' 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으나 일단 참고...

"사장님, 이거 원단 무게가 어떻게 됩니까?"

"자켓은 290gsm이고, 셔츠랑 바지는 230gsm입니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우리 부스에 두었던 원단 키트를 가져왔다.

(왼쪽부터 PBI TriGuard, 노멕스, 그리고 방염처리한 면 원단)

"사장님, 이거는 프로판 가스 사용해서 4초 동안 1000도 가열한겁니다. 노멕스랑, 면이랑 바스라지는거 보이시죠? 사장님 원단도 1000도로 4초 가열하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PBI 쓰신거 아니잖아요? 근데 라이터로는 20초 이상 해도 이렇게 안될겁니다. 라이터 불꽃이 1400도라는 건 말이 안되요."

직접 라이터로 사장님 원단과 내 PBI 원단에 불을 붙여봤다. 한 10초 정도 지나고 내 PBI 원단을 불꽃이 통과하자 사장님이 미소를 지으신다.

"그 원단은 불 붙네요?"

"사장님, 이 원단 185gsm입니다. 사장님꺼는 290gsm이잖아요. 두께 차이 때문에 그런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아, 잘 아시네..."

쭈뼛쭈뼛 하시더니 그 이후에 오는 방문객에게도 계속 1400도 이야기를 하신다. 나중에 협력사 K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보니 B 사장은 산불진화복 시장에서 가장 먼저 노멕스 진화복을 고가로 책정하신 양반이라고 한다.

한국의 산불진화대는 고가 고성능의 PBI 원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마도 가격 문제 때문에 시간은 좀 걸리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