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에 페이스북 개인계정에 작성한 글
방화복은 기본적으로 가벼울 수 없는 옷이다. 난연소재를 쓰는 겉감, 방수/투습 성능을 가지는 중간층, 그리고 최종적으로 열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안감으로 구성이 되어있는 옷이며,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맞닥들일 수 있는 여러가지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기본적으로 질기고 튼튼한 성질을 갖는다.
무게를 줄이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모든 방법에는 희생이 요구된다. 방수투습천을 제거하면 방수성능이 없는 방화복이 된다. 방화복에 무슨 방수성능이냐 하겠지만 화재진압은 많은 물을 사용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안감의 무게를 줄이려는 시도 역시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겉감이 불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열의 침투를 막는 것은 안감이다. 안감이 가벼워진다는 것은 대개는 안감이 얇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감이 얇아진다는 것은 곧 외부의 열이 더 빠르게 방화복의 가장 안쪽까지 침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감은 영어로는 thermal liner 혹은 thermal barrier라고 불리는데, 이 barrier(방어막)는 피아구별이 없다. 즉 밖에서 들어오는 열을 막는 역할도 하지만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안에서 나가는 열도 막는다.
달리 말해보자면, 안감을 얇게 하면 무게는 가벼워지고 두꺼운 느낌은 줄어들지만, 화상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단순히 이 세 구성원단(겉감, 방수투습천, 안감)의 무게만 놓고 비교한다면 유럽(EN)-한국-미국(NFPA)순으로 무겁다. 미국 방화복의 무거움은 매우 악명이 높다. 왜 이렇게 미국 방화복은 무겁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들었던 대답은... "미국에서는 소방관이 화상을 입으면 화상 치료에 드는 돈이 무지막지하게 많을 뿐만 아니라, 소방관이 소방본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성원단의 무게 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 역시도 방화복의 무게를 결정 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주머니가 있는지 없는지, 주머니의 크기나 형태는 어떤지, 무릎/어깨/팔꿈치에 보강재가 사용되었는지, drag rescue device나 그 밖의 악세사리가 달려있는지, 반사테이프가 차지하는 면적은 어느정도인지 등등... 별것 아닌 요소들이 더해지고 더해지면 나중에 가서는 의미있는 숫자가 되기도 한다.
결국 방화복 무게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나마 방화복으로 인한 부담을 줄일수 있냐는 고민이 따라오게 된다. 미국식 해법은 겉감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고, 안감은 피부에 닿는 부분이 좀 더 잘 미끄러지게 하여 마찰과 뻣뻣한 느낌을 줄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미국 방화복이 유럽 방화복에 비해 무겁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럽은 그냥 더 가벼운 소재들을 쓰는 것으로 해결을 봤다. 벨기에 신규방화복의 자켓 구성원단 무게는 총 570g/sqm이고 바지의 경우에는 475g/sqm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610~650g/sqm 수준이고, 미국은 가장 가벼운 소재로 조합을 해봐도 630g/sqm 수준, 대개는 680~720g/sqm 범위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럽방화복 역시 시원한 방화복일 수는 없다. 첫째로는 세겹짜리, 실제로는 6겹까지도 되는 옷이 통풍이 좋아봐야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소방관의 현장 활동이 보이는 강도와 화재현장의 주변온도를 고려해보면 방화복이 가지는 여하한 cooling effect는 현장활동 개시 5분안에 싹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영국의 한 소방본부에서는 바지에 안감을 빼버렸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차피 기동복(station wear)를 입으니 기동복이 안감 역할을 해준다는 것. 언제나 난연소재로 된 기동복을 입는다면, 괜찮은 해결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현행 기동복에 대해서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왔다. 우리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영역도 아니고, 파트너들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분야다. 다만 무엇이 기동복 표준의 핵심이고 정수인지, 그리고 왜 방염소재 기동복이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북미의 기동복 표준인 NFPA 1975의 핵심은 "방화복이 견디지 못하는 열에 노출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기동복이 화상을 더 악화시키지는 말아야 한다."이다. 우리네 활동복의 소재가 되는 폴리에스테르/나일론 계열 열가소성 수지가 미국에서 기동복 소재로 사용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몇몇 소방본부에서는 방화복 안에 입는 옷으로 Under Armour같은 브랜드의 기능성 의류를 금지시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기능성 의류들은 거의 대부분 폴리에스테르 계열이기 때문에. 열가소성 수지는 열이 가해지면 녹는다는 특징이 있다. 녹아서 피부에 달라붙으면 화상이 더 심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면은? 면은 열이 가해지면 굳어 부스러질 뿐 녹지는 않는다. 면으로 된 기동복은 NFPA 1975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면의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땀흡수가 좋고 착용감이 좋다. 다만 내구성이 좋지 않고 (염색)색상유지가 용이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땀 흡수는 좋지만 흡수한 수분을 잘 날려버리지는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내구성과 색상유지의 문제가 바로 아라미드 계열 기동복이 파고드는 부분이다. 아라미드 계열 기동복은 비싸다. 하지만 내구성이 좋고 색상유지가 잘되기 때문에 더 오래쓸 수 있고 교체빈도가 낮기 때문에 총비용으로 본다면 면 기동복을 구매하는 것 보다 아라미드 기동복을 구매하는 것이 낫다는 것.
아라미드 기동복의 단점은 뻣뻣한 착용감과 땀흡수를 모르는 불편함이다. 현장 소방관 사이에서는 퇴출의 목소리가 높고 중앙소방본부에서도 복제 개선을 위한 용역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용역 연구를 해봐야 이미 나와있는 해외 사례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동복이라는 하나의 옷에 너무 많은 기능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방화복 안에 입는 내의로서의 기동복은 성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본적인 보호역할을 방화복이 한다면, 내의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활동성과 착용감, 그리고 어느정도의 보호성능일 것이다. 반면에 대외활동 때도 입는 일상용 소방제복으로서의 기동복은 제복이 가지는 상징성, 근무복으로서의 깔끔함, 여러사람이 서있을 때 같은 색상으로 보이는 색상유지 등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만족하는 소재와 옷은 없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기동복에 대한 (아직 시작도 안한) 연구용역이 어정쩡한 결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더위와 악전고투하는 소방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에서도 매우 고온다습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나 올란도라 하더라도 악명높은 NFPA 방화복을 피해갈 수는 없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소방관들도 NFPA 방화복을 입는다. 그들은 어떻게 견뎌내는 것일까. 해답은 현장에서의 잦은 로테이션이 아닌가 싶다. 공격-휴식을 반복하면서 열을 식히고 수분과 영양보충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본사가 있는 샬롯의 소방본부는 15분 간격으로 교대를 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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