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6일 일요일

소방본부 장비담당자의 딜레마

 예전에 PBI 방화복을 사던 A소방본부에 방문한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영업담당으로 일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소방본부 장비담당자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참 PBI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분이 말을 끊었다.

"이대표, 잠시만요. 지금 설명하는 내용은 제가 다 아는 내용입니다. 동영상도 다 본 적 있고요. 저한테는 이런거 안해도 됩니다. 보세요, 소방관들 다치는거 언론 보도 나오잖아요. 그거 전부 다 나오는거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크게 작게 다치는 일 정말 많고, 대부분은 뉴스에 안나와요."

마시던 믹스커피를 마저 다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내부에서는 이야기가 돌죠. 그럼 장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사준게 뭐가 잘못된건 아닌가 생각이 들죠. 그런 생각 안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제일 좋은거 사주면 됩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대원이 다친건 안타깝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이래야죠."

멍해졌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건가. 

"예산이 부족하고 의회가 어떻고 뭐 그런 이야기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한 우리는 PBI입니다. 동료직원 영정 사진 앞에 두고서 그 때 가서 내가 제품을 잘못 선택한건 아닐까 하고 고민에 빠지느니 지금 조금 욕 먹는게 훨씬 낫습니다. PBI를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현재 있는 제품들 중에서 제일 좋은거니까 사는겁니다. 이렇게 해야 내가 마음이 편해요."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대원들 현장에 들여보내려면 최대한 잘 갖춰서 보내야죠. 다른데들은 안그런가요?"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 날 하늘은 유난히도 파랬고, 날은 꽤나 추웠다. 

댓글 2개:

  1. 현역 군인이며 물자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장비책임자님의 식견에 존경을 표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장에 나가는 대원들에게 주고싶은 단 한가지는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을 주는 것입니다.. 예산이 어떻고 가성비가 어떻고는 죽은 부하의 영정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책임자께 고개 숙여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잘 관리하지 않는 블로그가 되다보니 댓글이 늦었습니다. 그 분은 "저렇게 대쪽 같아서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조직에서 인정도 많이 받고 잘 지내시는 것 같아보였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