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3일 수요일

나고야 소방본부가 PBI를 선택한 이유

가격 대신 보호를 선택하다

시작은 2009년의 사고였습니다. 화재진압 중인 소방관을 섬락(flashover)이 덮쳤고 그의 방화복은 탄화되어 부스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소방관은 온몸에 2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2009년 사고 때 나고야 소방관이 입고있던 개인보호장비

나고야 소방본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마음 먹었고, 특히 불타는 건물 속으로 종종 들어가야 하는 구조대원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더 나은 방화복을 찾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새 방화복을 구매한 것은 2017년 3월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새 방화복은 일본에서 최초로 PBI 섬유가 사용된 방화복이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
첫번째 단계는 소재를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전통적인 메타/파라아라미드, PBO 섬유, 탄소 섬유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 소방본부들은 메타/파라아라미드를 사용한 방화복을 구매해왔습니다. 나고야는 오랜 기간의 신중한 연구 끝에 폴리벤지미다졸(PBI)을 채택하기로 하였습니다.


화염 노출 후 원단의 모습 비교

PBI섬유의 장점은 분해온도가 섭씨 700도에 이른다는 점입니다(참고영상). 따라서 열과 화염에 대한 내구성과 저항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PBI는 동시에 매우 유연하며 높은 수분율을 가지고 있으므로 열전도성이 낮고 대전방지성도 좋습니다.

나고야 소방본부가 특히 주목한 점은 PBI는 화염에 노출된 후에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마네킹에 방화복을 입힌 후 8초 동안 화염에 노출시키는 시험(참고영상) 후에도 PBI 겉감은 굳어 부스러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메타/파라아라미드 섬유로 제조된 방화복과 차별되는 점입니다.


방화복 화염노출 시험 (~1000℃) ISO13506

이 화염노출시험 결과를 본 후, 나고야 소방본부는 PBI가 섬락(flashover) 이후에도 소방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대도시 소방본부들이 이미 PBI 방화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나고야 소방본부는 PBI를 선택하는 것으로 거의 마음을 굳혔습니다.


PBI 방화복과 방화두건을 착용한 영국 왕립해군 소방대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남았습니다. PBI 방화복이 최상의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색상이 오직 금색과 남색으로 제한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나고야의 방화복은 지난 수십년 동안 나고야 그린(Nagoya Green)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따라서 소방본부는 전통의 올리브 그린이냐 아니면 새로운 방화복이냐 하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보호와 색상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때, 니케(Nikke)로 부터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색상의 변화는 적고 내구성도 좋은 PBI 원단을 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고야 소방본부는 이 새로운 원단을 받아들입니다.
나고야 소방본부의 기존 방화복
나고야 그린을 살려라
새로운 PBI 원단 샘플은 나고야 그린 색상에 가까웠습니다. 이 원단은 장기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니케가 2015년에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샘플원단은 모든 ISO, JIS기준은 물론 일본소방이 내놓은 새로운 지침의 기술요건을 모두 충족하거나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PBI Performance Products, Inc) 본사의 성능 요건은 국제표준이나 일본기준보다 더 높았습니다. 결국 PBI 본사의 승인을 받는데는 1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최종 샘플은 PBI 섬유 40%, 파라아라미드 섬유 60%에 립스탑 조직을 가진 원단이었습니다. 새로운 원단은 Nikke TORNADO with PBI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TORNADO의 열방호성능과 내구성은 현존하는 다른 PBI 원단들을 능가했습니다. 게다가 TORNADO는 더 다양한 색상선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색상을 중시하는 소방본부들에게는 PBI 원단을 선택할 때 색상 고민을 덜 하게 된 것입니다.

나고야 소방본부는 실구매 전 1년간 실착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테스트 결과 열과 화염에 대한 저항성은 물론 내구성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일선 소방관들에게 받은 중요한 의견은 PBI 원단은 유연하기 때문에 착용감이 좋고 움직임이 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새로운 PBI 방화복은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에 비해 30% 정도 비쌌기 때문입니다. 이는 PBI 섬유의 가격이 아라미드 섬유의 가격에 비해 10배 정도 높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나고야 소방본부의 새 PBI방화복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
나고야 소방본부는 나고야 시로부터 예산을 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30% 가격 인상은 소방본부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나고야 소방본부는 높아진 가격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방화복은 소방관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장비이기 때문입니다.

방화복은 “소방관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나고야 소방본부는 방화복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들이 최고라고 믿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나고야 소방본부는 반사테이프와 패드 부분에도 특별히 주목했습니다. 3M의 새로운 Scotchlite 반사테이프를 채택하였는데, 이 반사테이프는 봉제로 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열과 압력으로 방화복 겉감에 붙이는 방식의 제품으로서 반사테이프를 고정시킨 바느질이 띁어지는 문제, 반사테이프가 열과 화염에 노출되었을 때 녹거나 수축하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사선 모양으로 생긴 새 반사테이프는 부분적으로 손상이 있는 경우에 수선하는 것도 손쉽습니다. 스티커를 붙이듯이 새 테이프를 붙이고 다리미로 누르면 됩니다.

게다가 새 반사테이프는 방화복 겉감의 유연성을 감소시키지 않습니다. 소방관들도 새 반사테이프의 가시성이 좋다고 평가했습니다.

새로운 반사테이프 (3M은 페이지 담당자에게 입금해주세요 기업 010...)

나고야 소방본부는 무릎과 팔꿈치 부분에 아라실드(Ara-shield)를 5년간 사용해왔습니다. 가죽보다 높은 열저항성과 강도를 가진 제품입니다. 무릎과 팔꿈치는 마모에 약한 부분입니다. 소방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아라실드를 사용한 이후로 방화복의 사용기간이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아라실드 (텐카테도 입금 기다리겠습니다)

나고야 소방본부는 방화복의 디자인에도 주목했습니다. 나고야는 안전확보용 벨트를 바지 허리부분에 메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통상적으로 일본 소방관들이 자켓의 허리부분에 벨트를 메는 것과 차별되는 지점입니다.


자세히 보면 자켓 허리 부분에 벨트가 있습니다

자켓 바깥에 벨트를 메는 것은 움직이기에도 좋고 화염이나 더운 공기가 자켓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데도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소방관은 언제나 공기호흡기를 등에 메고 화재현장으로 들어갑니다. 공기호흡기의 벨트가 화염이나 뜨거운 공기가 바지와 자켓 사이의 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때문에 굳이 자켓 바깥에 벨트를 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지에 안전확보용 벨트를 착용하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자켓 내부의 빠른 환기입니다. 소방관이 공기호흡기를 푸는 순간부터 자켓 안쪽으로 공기가 유입되기 시작하며 안전확보용 벨트를 푸는 추가적 동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안전확보용 벨트는 바지로

나고야 소방본부는 개인보호장비에 드는 총 비용을 감소시키는데도 노력을 기울였는데, 기존에는 센터용, 구조용, 화재용으로 나눴던 신발을 한종류로 통일한 것이 한 예입니다. 새로운 소방용 부츠는 기존 제품에 비해 12cm나 짧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나고야 소방본부는 수명을 다한 방화복을 가방 제조업체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시는 새로운 수입원을 얻었고 폐기물 처리비용을 줄이는데도 성공했습니다. 폐방화복으로 만든 가방들은 인기가 매우 좋습니다. 가벼우면서도 질긴 재질, 독특한 디자인과 원단의 느낌, 그리고 원단이 소방관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쓰였다는 이력 때문에 구매자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폐방화복에서 가방으로
나고야 소방본부의 자부심
새 방화복 선택에 각별한 관심을 둔 또 다른 이유는 나고야 소방본부의 자존심입니다. 나고야 소방본부는 토카이 지방을 대표하는 소방본부입니다. 2300여명의 소방관과 내근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규모 소방본부이기 때문에 나고야 소방본부는 자체적으로 방화복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카이 지방의 다른 소규모 소방본부는 방화복을 개선하고 싶어도 개선작업에 수반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고야 소방본부는 소규모 소방본부들이 나고야의 방화복 선택을 따르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을 들인 방화복 개발/선택인 만큼 다른 대형 소방본부들도 나고야 소방본부의 사례를 배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전 일본의 소방본부는 나고야 소방본부가 도입한 “PBI 섬유”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고야 소방본부의 PBI 방화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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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내용은 일본 소방잡지 J RESCUE 2017년 9월호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영어로 번역된 내용을 페이지 관리자가 다시 국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중간에 외부 이미지를 삽입하였으며 의역 또는 내용의 변경이 있습니다. 

- 국내에서는 (주)산청(제품보기)과 (주)하나산업이 PBI 겉감을 사용한 방화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방화복 화염노출시험이 더 궁금하다면 -> 확인 
- 국내방화복 겉감(PBI vs. 아라미드)의 성능 차이가 궁금하다면 -> 확인

2017년 6월 26일 월요일

개인보호장비의 약한 고리, 방화두건

PBI 방화두건


고백하건대 저는 방화두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방화두건은 공기호흡기의 면체로 가려지지 않는 얼굴, 머리, 목 부분을 열과 불로부터 보호하는 매우 소중한 장비입니다. 하지만 방화두건의 중요성은 꽤나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습니다. 방화복과 화재진압용 장갑이 규격 측면에서, 그리고 제품 측면에서 진화해오는 동안 방화두건은 "없는 것 보다는 나은" 수준으로 머물러왔습니다. 오늘은 이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해보고자 합니다.

소방관 개인보호장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방관을 화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입니다. 이러한 역할은 대개는 열방호성능(thermal protective performance, TPP)이라는 명칭으로 표현됩니다.

가령 방화복 성능기준은 방화복이 80kW/㎡의 불꽃열에 노출된 경우에도 17초 동안은 2도 화상이 생길 정도로 내부 온도가 올라가지 않게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피부 표면온도가 24℃ 올라가면 2도 화상이 생긴다고 추정됩니다. 이를 열통과지수(heat transfer index, HTI)로 표시를 해보자면"HTI24 ≥ 17초"가 됩니다. "HTI24 ≥ 17초" 를 풀어서 써보자면, "섬락 수준의 불꽃열에 노출 되었을 때 방화복 안쪽 온도가 24℃ 상승하여 2도 화상이 걸리는데 17초 이상이 걸려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화재진압용 장갑의 열방호성능을 평가할 때도 비슷한 방식이 사용됩니다. 다만 화재진압용 장갑에게 요구되는 성능은 13초간 2도 화상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열방호성능입니다. 약간 차이가 있네요. 복잡한 이야기는 미뤄두고, 방화복에 요구되는 열방호성능과 장갑에 요구되는 열방호성능에 차이는 그.래.도. 용인할만 하다고 간주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방화두건에 대해서는 요구되는 열방호성능이 없습니다. 1000℃의 열이 나오는 전기로의 30cm 거리에서 원단을 두고 반대편의 온도 상승을 측정하는 열통과시험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불꽃열 노출이 아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열방호성능 시험과는 다릅니다.

물론 이 시험을 통과하는 제품들 중에서도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험이 최저가 입찰 제도와 결합했을 때 두건 제조사들의 최적 선택은 시험에는 통과할 수 있으면서, 원가는 가장 낮출 수 있는, 최소한의 원자재가 사용된 방화두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90g 내외의 한겹짜리 방화두건을 씁니다.

한겹짜리 방화두건 (88g)

이제, 소방관이 건물 내부에서 섬락(flashover)을 겪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방화복은 (이론과 표준시험의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17초간 소방관을 보호해줍니다. 장갑은 (최초품질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적어도 13초간 소방관을 보호해줍니다. 두건은? 현재 사용되는 제품들은 (시험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북미규격인 NFPA 1971의 10초나 유럽규격인 EN 13911에서 요구하는 8초를 견딜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마 소방관이 얼굴에 2도 화상을 입는데는 5초가 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는?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얼굴과 목만 화상을 입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방화두건을 소방보호장비의 약한고리라고 부릅니다. 종종 두건을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방관이 안면부나 목에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무엇이 이유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방화두건은 약한고리가 되었을까요? 방화복이나 장갑은 관심을 많이 받는 장비이지만 방화두건은 아닙니다. 무검사 방화복이나 목장갑 논란 같은 주목을 방화두건은 받은적이 없으니까요. 규정이 대대적으로 개정된 것도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규정 탓만 할 것은 아닙니다. KFI 인정을 받으면 같은 제품으로 간주하고 제품간 성능차이를 보지 않는 구매 관행, 최저가 입찰제도 하에서 더 좋은 제품보다는 더 싼 제품이 개발되고 생산되는 현실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KFI 인정기준을 능가하는 제품들은 일부 소방관들이 알음알음 해외직구를 통해 구할 뿐 나라장터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KFI 인정을 받은 두겹짜리 방화두건이지만
조달구매는 불가

산청은 PBI/Twaron 조합으로 두겹짜리 방화두건을 개발하여 KFI 인정을 받았습니다.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는 PBI 두겹 두건들이 보이는 성능에 비추어보건대 이 두건은 적어도 HTI24 ≥ 10초 이상의 성능을 보일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산청은 조달 정책상의 이유 (동종 제품이 2개 이상이어야 등록) 나라장터에는 제품을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즈음 되면 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해서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국민안전처에서 장갑과 방화두건의 성능기준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합니다. 올해 말이 지나면 개선된 성능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울한 예상을 펼쳐보자면, 개선된 성능기준에 맞는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다시 그 중에서 최저가 제품들이 선택될 것입니다. KFI 인정기준을 맞추면서 원가를 최소화 하는 전략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눈이 높아져가는 현장 소방관들은 다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겠지요.

결국 좋은 제품들이 나오려면 제조사, 현장소방관, 조달제도, 개인보호장비 담당자, 성능기준이 합이 잘 맞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신뢰하고 쓸 수 있는 제품들이 (가능하면 PBI를 써서...)  지급되기를 바랍니다.